본문 바로가기
간호학개론

미군정기 및 정부수립기 간호와 한국전쟁 전,후복구기 한국간호

by 널스톡톡 2024. 10. 7.
728x90
반응형

한국의 해방 직후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 동안의 간호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함께 발전했습니다. 이 시기 한국간호는 행정조직의 변화, 교육제도의 정비, 법령의 제정, 그리고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 미군정기(1945~1948년) 간호

미군정기는 1945815일 광복 이후부터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입니다.

해방을 맞은 대한민국

(1) 간호 행정 조직
미군정 보건행정: 해방 직후 미군정은 보건부(Department of Public Health)를 설치하여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를 재건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간호는 미군정의 보건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뤄졌으며, 보건후생부 내에 간호사업국을 설치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 간호사업을 총괄하는 정부 행정부서를 두고 산하에는 보건간호과, 기관간호과, 조산사업과 등을 조직하여 운영하고 지방의 각 도에 간호사업계를 설치하여 보건정책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공중보건 간호활동이 강조되었습니다. 간호사들은 주로 전염병 예방, 모자 보건, 건강 교육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군 병원 내 간호조직: 해방 직후의 혼란 속에서 군 병원 및 임시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긴급한 의료 상황을 처리하며 군인 및 민간인을 대상으로 간호를 수행했습니다.

(2) 간호 교육 제도
일제강점기 간호교육의 잔재: 해방 직후 초기에는 일제강점기 간호사 교육 체계가 여전히 유지되었습니다. 일본식 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간호학교가 운영되었으나, 점차 미국식 교육 모델을 도입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습니다. 등간호학교로 개칭하였고 입학자격은 중학교 졸업자로 하였으며 교육과정은 3년으로 통일하였습니다.

간호와 조산교육과정을 병합 운영하여 졸업과 동시에 간호부 및 조산부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간호학교 재편: 194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간호과가 개설되는 등, 간호 교육기관이 재편되고 서구식 교육이 점차 도입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간호사 양성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었습니다.

(3) 간호 관련 법령
간호사 면허제도의 도입 준비: 미군정기 동안 간호사 면허를 위한 기초적인 법적 체계가 마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 간호사 면허는 체계적이지 않았으며, 일본식 제도가 유지되었으나, 서구식 면허제도로의 전환이 추진되었습니다.

(4) 주요 이슈
전염병 예방과 대응: 해방 직후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등 각종 전염병이 유행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간호사들이 전염병 예방 접종, 위생 교육, 지역사회 보건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의료 인력 부족: 해방 직후 의료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의사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부족한 인력을 보충했습니다.

 

 

 

 

2.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1948~1950년대) 간호

대한민국 정부 수립

 

(1) 간호 행정 조직
보건사회부 설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보건사회부가 설치되어 보건 행정이 중앙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습니다. 간호와 관련된 보건행정조직은 축소되었고 간호사업국도 간호사업과로 격하되었습니다.

농어촌 보건소 간호활동: 농어촌 지역 보건소를 중심으로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예방접종, 모자보건, 위생 관리 등의 공공보건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2) 간호 교육 제도
간호교육 체계의 정비: 정부 수립 이후 간호 교육은 3년제 전문학교 중심으로 개편되었으며, 간호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이 체계화되었습니다.

(3) 간호 관련 법령
국민의료법 제정(1951): 1951년 대한민국 정부는 의료법을 제정하여 간호사 면허 제도를 법적으로 확립했습니다. 이 법령은 간호사 자격, 면허 시험, 업무 범위 등을 규정하며 간호사의 직업적 지위와 권한을 명확히 했습니다.

의료업자에 대한 규정: 의료업자는 의료, 치과의사, 한의사, 보건원, 조산원, 간호원을 둔다고 명시하였으며 간호부와 산파(조산부), 보건부를 간호원, 조산원, 보건원으로 명칭을 개칭하였습니다.

간호원, 조산원, 보건원의 면허제도: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한 학교를 졸업자(무시험제도)와 자격면허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하였습니다.

검정고시제 부활: 지방행정의 장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도 면허를 부여하였는데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여 반대하였지만 전쟁의 특수성으로 인해 의료인 양성 교육기관과 의료인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3.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1950~1960년대)

 

한국전쟁

(1) 간호 행정 조직
전시 간호활동: 한국전쟁 동안 간호사들은 군 병원과 야전 병원에서 군인과 민간인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전시 상황에서는 간호사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다수의 부상자를 돌보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전후 복구기 간호 조직: 전쟁 후 국가 복구를 위해 보건소와 병원을 재건하고, 그곳에서 간호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농어촌 보건소와 공중보건 간호사들의 역할이 부각되었습니다.

(2) 간호 교육 제도
교육기관 재건: 전쟁으로 파괴된 간호교육기관들이 전후 복구 과정에서 다시 설립되었고, 교육과정 역시 개선되었습니다. 전쟁 중 및 전후 복구기 동안 간호사 양성이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었습니다.

간호 교육 수준 향상: 1950년대 이후 간호 교육은 3년제 전문학교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1955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최초로 4년제 간호학사과정이 개설되었고 점차 4년제 간호학 교육기관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학문적 연구와 실무 능력을 갖춘 간호사가 양성되었습니다.


1962년에 간호고등기술학교는 간호학교로 개편되어 초급대학으로서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4) 주요 이슈
전시 간호인력 문제: 한국전쟁 동안 간호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긴급하게 간호사로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전쟁 중에는 미군과 국제 적십자 등 외부의 지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전후 복구기 전염병 대응: 전쟁 후 각종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면서 간호사들이 전염병 예방과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예방 접종, 감염 관리 등이 간호사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4. 결론

한국의 해방 직후부터 미군정기,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는 한국 간호가 근대적 시스템을 갖추고 발전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간호 행정 조직이 중앙 정부의 주도로 체계화되었고, 간호 교육은 점차 서구식 모델을 도입하여 전문성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간호사 면허 제도가 법적으로 확립되면서 간호사의 지위와 역할이 명확해졌습니다.

아래의 동영상 강의와 강의파일을 참고하여 학습하기 바랍니다. 

https://youtu.be/lATdUSxzVQk?si=SZXm1j7_mNJJOymi

 

해방직후 한국간호와 정부수립기, 한국전쟁전후 복구기 간호.pdf
2.72MB

 

 

728x90
반응형

댓글